실록6 [실록] 이덕형 인물평, 사평 등 * 본문에 없는 사평 제보 환영합니다. 『선조실록』 일자 기사 본문 링크 선조 26년 7월 13일 비변사의 요청으로 황정욱이 서울에 도착하는 즉시 잡아 올리기로 하다 사람됨이 본래 재주가 있어서 약관(弱冠)에 높은 벼슬에 올랐지만, 오로지 아첨하여 비위 맞추기만을 일삼으니 상이 전적으로 신임하였다.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2607013_007 선조 26년 9월 5일 제독 접반사 이덕형이 찰원에게 남쪽 왜적의 섬멸을 청할 일로 보고하다 이덕형(李德馨)은 약관(弱冠)에 수재(秀才)로 등용되었다. 이산해(李山海)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화패(禍敗)를 면할 수 있었다.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2609005_007 선조 26년 11.. 2024. 3. 24. [실록] 이항복 인물평, 사평 등 * 본문에 없는 사평 제보 환영합니다. 『선조실록』 일자 기사 본문 링크 선조 28년 3월 7일 이항복·이덕형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해학을 잘했다. 반식(伴食)이나 하는 재상(宰相)은 되겠지만, 진실로 세상을 제도할 수 있는 인재는 아니다.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2803007_004 선조 28년 7월 10일 이조 판서 이항복이 명사 수행시의 거취에 대해 건의하다 성품이 큰소리 치기를 좋아하고 검속(檢束)하는 데에 구애받지 않아 마치 세상을 완롱(玩弄)하는 듯한 태도를 지녀 당시 여론이 병통으로 여겼다.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3003001_005 선조 30년 3월 1일 이항복 등 7인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해학이 너무 지.. 2024. 3. 24. [선조실록] 이덕형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3. 5. 16. [광해군일기] 우의정 이항복이 존호를 올리는 일에 유영경이 엄폐했다는 것을 알지 못함을 아뢰다 광해군일기[중초본] 53권, 광해 4년 5월 15일 무신 9번째기사 1612년 명 만력(萬曆) 40년 우의정 이항복이 존호를 올리는 일에 유영경이 엄폐했다는 것을 알지 못함을 아뢰다 "맨 처음 존호를 청하자고 의논할 적에 양사의 계사를 보니, 유영경이 엄폐했다는 등의 말이 있어서, 신이 좌의정 이덕형에게 ‘당시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 보니 ‘듣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인하여 덕형이 말하기를 ‘논공(論功)이 절반도 끝나기 전에 나는 병으로 체직되어 그 뒤의 일은 들어서 아는 바가 없네. 그대는 원훈(元勳)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참여했으면서 어찌하여 내게 묻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나는 빈청(賓廳)에 있으면서 이같은 기색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묻는 것이네.’라고 하였습니다. 속담.. 2022. 11. 12. [광해군일기] 영의정 이덕형이 사직하는 차자를 올렸으나 받아들이지 않다 광해군 5년 계축(1613) 8월 8일(계사) 영의정 이덕형이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삼가 생각건대, 신이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환절기에 질병을 무겁게 앓아 신음하는 소리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니, 이는 조정에 늘어서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불쌍히 여겼던 바였습니다. 이달 2일 밤에는 곽란(霍亂)이 매우 심하여 소명이 내렸는데도 달려가지 못함으로써 옥사의 국문이 지체되게 하였고, 지난 달에는 또 담궐(痰厥)을 앓아 기가 상승함으로써 육맥(六脈)이 막혀 어지럽고 의식이 없어 거의 인사불성이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나랏일이 한창 급박한 시기에 신이 병에 걸려 출사를 못함으로써 심지어는 때맞추어 의논해서 아뢰어야 할 일까지도 나아가 올리지 못하였으니, 죄려가 더욱 커 죽을 곳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 2019. 10. 7. [광해군일기] 오성 부원군 이항복의 폐비 축출 반대에 대한 헌의 광해군 9년 정사(1617) 11월 24일(을유) 오성 부원군(鰲城府院君) 이항복(李恒福)이 헌의하였다. “신은 8월 9일에 중풍(中風)이 재발하여 몸은 죽지 않았으나 정신은 이미 탈진된 상태입니다. 직접 뵙지도 못하고 멀리에서 분수에 입각하여 죽음을 결심한 지도 지금 거의 반년입니다만 아직 병석에 있습니다. 공무에 관한 모든 일에 대해서 대답하여 올리기 어려운 형편이지만, 이 문제는 국가의 대사인만큼 남은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는데 어찌 감히 병들었다고 핑계대면서 잠자코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전하를 위하여 이 계획을 한 자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임금께 요순의 도리가 아니면 진술하지 않는 것이 바로 옛날에 있었던 명훈(明訓)입니다. 순임금은 불행하여 완악한 아비와 사나운 어미가 항상 순임금을 죽.. 2019. 10. 7. 이전 1 다음